초려에 세번이나 찾아가다.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하고 정성을 다하다.
중국 삼국시대에 촉한의 유비가 제갈량을 자기의 인재로 쓰기 위하여 남양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량의 초옥으로 세번이나 찾아간 고사에서 유래한다.
촉나라의 재상 제갈공명이 선주(先主) 유비(劉備)의 사후에 위나라를 토벌하려 떠나면서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받친 《출사표》(出師表 신하가 적을 정벌하러 떠나기 전에 황제나 왕에게 올리는 표문)가 출처이고,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진(晉)나라 이밀(李密)이 무제(武帝)가 자신을 세마(洗馬)로 임명하자, 자신이 아니면 나이 아흔인 조모(祖母) 유씨(劉氏)를 봉양할 사람이 없으므로 벼슬에 나갈 수 없다는 사연을 적어 올린 《진정표》(陳情表), 당나라 한유가 절친하게 지낸 십이랑의 상사(喪事)를 듣고 둘 사이의 우정에 대하여 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함께 중국의 3대명문(三大名文)으로 꼽힌다.
三顧茅廬(삼고모려)도 같은 의미이다.
草廬三顧(초려삼고) 혹은 茅廬三顧(모려삼고)도 같은 의미이다.
제갈량과 관련된 고사성어에는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달아나게 한 고사에서 유래하는 死諸葛走生仲達(사제갈주생중달), 제갈량이 맹획(孟獲)을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잡은 고사(諸葛亮七縱七擒孟獲 Zhuge Liang released and captured Meng Huo seven times)에서 유래하는 七縱七擒(칠종칠금), 제갈량이 자기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전략을 세워 싸우다가 위나라의 군대에 대패한 마속의 목을 베며 눈물을 흘린 고사에서 유래하는 泣斬馬謖(읍참마속), 유비가 물고기에게 물이 있다시피 자기에게는 제갈량이 있어야 한다고 한 표현에서 유래하는 水魚之交(수어지교) 혹은 如魚得水(여어득수 like fish getting water)가 있다.
three humble visits to a thatched cottage
Liu Bei(劉備|) recruits Zhuge Liang(諸葛亮) to his cause by visiting him three times
Liu Bei visits three times to the thatched cottage of Zhuge Liang (later his chancellor) in order to recruit him during the late Eastern Han dynasty.
Liu Bei's visit to hire Zhuge Liang in the late Han Dynasty
sincerely and repeatedly request someone to take up a post
invite somebody many times
《三國志 蜀書 諸葛亮傳》 由是先主遂詣亮,凡三往,乃見。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유시선주수예량,범삼왕, 내견。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고, 모두 세 번을 가서야 비로소 만난다.
諸葛亮 《出師表》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
제갈량 《출사표》 신본포의, 궁경남양, 구전성명어난세, 불구문달어제후. 선제불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이당세지사. 유시감격, 수허선제이구치.
I was of humble origin, and used to lead the life of a peasant in Nanyang. In those days, I only hoped to survive in such a chaotic era. I did not aspire to become famous among nobles and aristocrats. The Late Emperor did not look down on me because of my background. He humbled himself and visited me thrice in the thatched cottage, where he consulted me on the affairs of our time. I was so deeply touched that I promised to do my best for the Late Emperor.
산하(제갈공명)는 본래 베로 지은 옷이나 입고 남양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구차하게 목숨이나 유지하려고 할 뿐, 제후에게 나아가 이름을 널리 떨치려는 생각은 없는 사람이다. 선제 유비는 신하를 비천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황송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어 신하에게 세상일을 묻기 위하여 무려 세 번이나 산하가 거처하는 초려를 찾아온다. 결국 신하는 선제 유비의 삼고초려에 감격하여 마침내 그 뜻을 받들게 되고, 선제 유비를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다.
[해설]
+ 布衣(포의)
베로 지은 옷
벼슬이 없이 평민으로 사는 선비를 뜻한다.
+ 苟全性命(구전성명)
구차하게 목숨을 유지하다.
+ 亂世(난세)
어지러운 세상
+ 聞達(문달)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다.
+ 先帝(선제)
유비
+ 卑鄙(비비)
신분이 비천하다.
+ 猥(외)
황송하게도
송구하게도
+ 枉屈(왕굴) 枉臨(왕림)
다른 사람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경우를 높여 이르는 말
+ 草廬(초려)
볏짚이나 밀짚, 갈대, 왕골, 띠, 풀 따위로 이엉을 만들거나 지붕을 인 집
+ 當世(당세)
그 시대나 당시의 세상
+ 驅馳(구치)
국가나 다른 사람의 일을 위하여 열심히 돌아다니다.
[단상]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의형제를 맺고 서로 의기투합한다. 유비, 관우, 장비는 세상에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씩씩하고 용맹하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軍師)가 없어 조조에게 늘 고전을 면치 못한다. 유비에게는 유능한 참모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유비는 남양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량의 존재를 알게 된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마차에 예물을 가득 싣고 제갈량의 초옥으로 세 번이나 찾아가 국사(國師)가 되어 달라고 간청한다.
유비 일행이 처음 제갈량의 초옥을 찾은 때에 제갈량은 집에 없고, 집을 지키는 동자가 출타중이어서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대답한다. 얼마 후 유비 일행은 다시 제갈량의 초옥을 두 번째로 찾아간다. 역시 제갈량은 부재중이어서 유비 일행은 제갈량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온다. 해가 바뀐 후 유비 일행은 세 번째로 제갈량의 초옥을 찾아간다. 동자가 이르기를 제갈량이 지금 낮잠을 주무시고 있으므로, 깰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유비는 꾹 참고 견디며 기다리려 하지만, 관우와 장비는 무례하다고 고함을 지르며 야단법석을 떤다. 마침 제갈량이 밖의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다.
47세의 유비는 27세의 제갈량 앞에 무릎을 꿇고 찾아온 이유를 설명한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뜻을 같이 하여 대업을 이루자고 간청하지만, 제갈량은 지금의 은거생활에 만족한다며 거절한다. 유비는 거듭 거듭 간청한다. 제갈량은 자기의 초옥을 세 번이나 찾아오면서까지, 유비가 어린 자기 앞에 무릎까지 꿇으면서 전쟁으로 고통을 받는 백성을 위하여 지혜를 달라고 하는 유비의 간청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유비와 뜻을 같이 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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