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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학당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by kimlaw 2022. 10. 13.

《論語 學而》 子曰 : "學而時習之, 不亦說 [yuè] 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논어 학이》 자왈 : "학이시습지, 불역열 [yuè] 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늘 익히니 정말 기쁘지 않은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역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니 역시 군자(君子)가 아닌가?
The Master said,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 Is it not delightful to have friends coming from distant quarters? Is he not a man of complete virtue, who feels no discomposure though men may take no note of him?"

[해설]
▯ 子(자)
본래 지위가 있거나 학문이 깊은 남자에 대한 존칭을 나타내는 표현이며, 때로는 남자를 총칭하기도 한다. 다만 논어에서 子曰(자왈)의 子는 공자 혹은 그 말씀을 지칭한다.
▯ 學(학)
주로 서주(西周)의 예(禮), 악(樂), 시(詩), 서(書)와 같은 전통문화나 전적(典籍)을 학습한다는 의미이다.
▯ 而(이)
보통 곧(乃 則), ...써(以) 혹은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사(and, but)로서의 역할을 한다.
▯ 時習(시습)
時(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時는 때로는, 제때에(以時), 늘(時時) 등으로 해석된다.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는 時를 「時時」(時常)로 해석한다. 그리고 習(습)은 禮(예)와 樂(락)을 연습하고, 詩(시)와 書(서)를 복습한다는 의미이다. 역시 溫習(온습)이나 實習(실습), 練習(연습)과 같은 의미도 포함한다.
▯ 說(열) [yuè]
희열, 유쾌, 흥취와 같은 의미이다.
▯ 有朋(유붕)
友朋(우붕)을 가리킨다. 보통 동문(同門)이 朋(붕)이므로, 같은 스승의 문하에서 학습한 사람이 붕(朋)이며, 역시 의기가 투합하고 지향이 같은 사람도 붕(朋)이라 할 수 있다.
▯ 樂(락)
說[yuè]과는 약간 구별된다. 說(happy)은 내적인 상태로 내심(內心)에 생기고, 樂(joyful)은 바로 밖으로 나타난다.
▯ 人不知(인부지)
문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며, 과연 남이 무엇을 부지(不知)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목적어가 없으나, 일반적으로 知(지)는 이해라는 의미로 사용되므로, 人不知(인부지)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别人不了解自己)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慍(온) [yùn]
분노나 원한을 가리킨다.
▯ 군자(君子)
군자는 논어에 매우 많이 나온다. 때로는 덕망이 높은 사람(man of complete virtue), 지위나 신분이 있는 사람(the superior man), 학자(scholar), 신사(gentleman) 등을 지칭하나, 본문에서 군자(君子)는 고상한 인격과 폭넓은 지성을 겸비한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이시습지는 논어의 맨 처음에 나오는 문장인 만큼 그 해석에 대하여 정말 여러 가지 견해나 주장이 있다. 각자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모두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時(시)를 '늘'(항상, 끊임없이)로 해석하는지 '때때로' 혹은 '제때에'로 해석하는지, 혹은 學(학)이나 習(습)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지가 뭐 그리 중요한지 난감할 뿐이다.
배우고 늘 익히든, 배우고 때때로 익히든, 혹은 배우고 제때에 익히든 배우고 익혀서 몸속을 감도는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時習(시습)에서 時는 학습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기쁨을 주므로, 많은 기쁨을 주는 학습에 매진하여야 한다는 정도로 해석하고 이해하면 충분하다.
不亦說乎(불역열호)에서 說은 말씀 설이 아니고 기쁠 열이다. 흔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로 이해한다. 물론 亦 또 역이 또한, 어찌 등과 같은 뜻을 가지므로, 亦이라는 글자에 충실하자면 옳은 해석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이 기쁜데 학습도 기쁘다, 다른 무엇은 기쁘지 않은데 학습은 기쁘다는 암시를 주는 '또한' 혹은 '어찌'라는 표현보다는 몹시(すごく), 아주, 정말로, 대단히(非常に)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習(습)은 羽 깃 우와 白 흰 백으로 구성된다(白은 굳이 설명하자면, 从丿从日이며 본래는 해가 뜨고 해가 지기 직전의 하늘색을 가리키나, 丿과 日이 합하여 해가 솟아오르듯, 어떤 동작이나 상황이 시작되거나 위로 향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설문해자는 습(習)을 「數飛也」(삭비야)로 설명하며, 數는 자주 삭이므로(셀 수가 아니다), 습(習)이란 자주 난다, 즉 새끼 새가 자주 날갯짓을 하며 나는 연습을 한다는 뜻이다. 논어집주(論語集注)도 역시 습(習)을 「鳥數飛也」(조삭비야)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습(習) 자체에도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날기를 배우는 새끼 새가 창공으로 비상하기 위하여 수없는 날갯짓을 통하여 나는 방법을 터득하듯, 배운 내용을 꾸준히 실습·복습하고, 또한 실천까지 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붕(朋)이 누구인지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본래 朋 벗 붕은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같은 스승 밑에서 수학한 동문(同門)을 가리키나, 동학(同學 classmate)은 물론, 붕우(朋友 friend) 혹은 동류(同類 same kind)는 모두 붕(朋)이다. 또한 피차가 교류하면서 서로 달가워하면 朋(붕)이 될 수 있다. 동학동문(同學同門)뿐만 아니라, 어깨동무나 친구(親舊), 심지어 동지(同志)가 모두 만나면 즐거운 붕(朋)이며, 굳이 누구 누구를 따질 필요가 없다. 만나서 즐거운 사람이면 누구나 붕(朋)이다. 만나서 술을 한잔 같이 하거나, 찻잔을 앞에 놓고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가진다면 그 두 사람은 붕(朋)이다. 자원방래(自遠方來)는 글자 그대로 멀리서 만나려 찾아온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붕(朋)이 멀리서 찾아와 만날 수 있다면 즐겁기가 그지없다. 그러나 붕(朋)이 반드시 멀리서 찾아와야만 즐겁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까이 있는 붕(朋)이 찾아오더라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다.
說在心, 樂在外(열재심, 낙재내)이다. 기쁨은 몸속으로 퍼지고, 즐거움은 밖으로 나타난다. 멀리서 가까이서 찾아온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서로 만면에 희색이 가득하다. 수다를 떨다 보면,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즐거운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學習在己, 知不知在人(학습재기, 지부지재인)이다. 학이나 습은 자기가 하고,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는 타인에 달려있다. 스승으로부터 둔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학습이 부족하다고 핀잔을 듣더라도, 부모나 주위에 있는 친구 혹은 친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기에 대한 평가나 인정 여부는 그 타인이 결정하므로, 그 평가나 결정을 굳이 탓하고 화낼 필요는 없다.
누가 군자(君子)인지를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고전에서도 군자를 정의하는 표현이 각양각색이다. 공자는 군자를 소인과 비교하여 君子懷德, 小人懷土(군자회덕, 소인회토 - 논어 이인), 즉  "군자는 도덕(virtue)을 생각하고 소인은 편안(comfort)을 생각한다"고 하거나,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군자유어의, 소인유어이 - 논어 이인), 즉 "군자는 의리(righteousness)에 밝고, 소인은 이익(gain)에 밝다",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 논어 술이), 즉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며 여유가 있고, 소인은 항상 근심·걱정이 가득하다"(The superior man is satisfied and composed, the mean man is always full of distress)고 한다. 또한 君子不器(군자불기 - 논어 위정 The accomplished scholar is not a utensil), 즉 "군자는 담는 물건과 그 크기가 정하여진 그릇이 아니다", 즉 어느 한 분야에만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추고 세상을 다스리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고, 君子不黨(군자부당 - 논어 술이 The superior man is not a partisan), 즉 군자는 편을 가르지 아니하고, 君子群而不黨(군자군이부당 - 논어 위령공 The superior man is sociable, but not a partisan), 즉 군자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도 패당을 짓지 아니하고, 君子貞而不諒(군자정이불량 - 논어 위령공 The superior man is correctly firm, and not firm merely), 즉 군자는 정도를 따르고 작은 신의에 얽매이지 아니한다는 표현도 군자가 어떤 자세를 가지야 하는지를 짐작케 한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일반적으로 군자는 "행실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사람",  "성품이 어질고 학식을 두루 갖추어 지성이 출중한 사람", 신사(紳士 - 품행과 예의가 바르며 점잖고 교양이 있는 사람)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타인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기를 주목하지 않더라도,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성내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는 덕목도 군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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