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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臥薪嘗膽(와신상담)

by kimlaw 2022. 12. 31.

검불더미에 눕고, 쓸개를 맛보다.
원수를 갚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이겨내다.
座薪懸胆(좌신현단), 즉 "섶나무 위에 앉고, 쓸개를 걸어 두고 맛본다"도 원수를 갚기 위하여 모진 노력을 다한다는 표현으로 같은 의미이다.
월(越)나라와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도져서 죽은 오왕합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오왕부차가 원한을 잊지 말고 갚아달라는 오왕협려의 유명(遺命)을 상기하며 항상 섶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월왕구천(越王句踐)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간 고사와 오왕부차 아래에서 3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치욕스런 생활을 한 후에 월나라로 돌아온 월왕구천이 오왕부차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며 쓸개를 핥아 그 맛을 본 고사에서 유래한다.
sleep on brushwood and taste gall
King Goujian of Yue sleep on firewood and lick a gallbladder everyday to remember the humiliation of his previous defeat by the State of Wu.
going through thick and thin to attain one's objective
enduring unspeakable hardships and privations for the sake of vengeance
go through unspeakable hardships and privations
undergo self-imposed hardships
endure hardships to accomplish some ambition
  
《史記 越王句踐世家》 吳既赦越,越王句踐反國,乃苦身焦思,置膽於坐,坐臥即仰膽,飲食亦嘗膽也。
《사기 월왕구천세가》 오기사월,월왕구천반국,내고신초사,치담어좌,좌와즉앙담,음식역상담야。
오나라의 부차가 월나라의 구천을 풀어준다. 월나라로 돌아온 월왕구천은 바로 몸을 고달프게 하고, 매우 애를 태우며 오왕부차에 대한 복수를 생각한다. 월왕구천은 앉는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둔다.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고, 먹거나 마실 때에는 또한 쓸개를 핥아 그 맛을 본다.
  
[成語古事]
公元前497年,两国在夫椒交战,吴国大获全胜,越王勾践被迫退居到会稽。吴王派兵追击,把勾践围困在会稽山上,情况非常危急。此时,勾践听从了大夫文种的计策,准备了一些金银财宝和几个美女,派人偷偷地送给吴国太宰,并通过太宰向吴王求情,吴王最后答应了越王勾践的求和。
但是吴国的伍子胥认为不能与越国讲和,否则无异于放虎归山,可是吴王不听。
越王勾践投降后,便和妻子一起前往吴国,他们夫妻俩住在夫差父亲墓旁的石屋里,做看守坟墓和养马的事情。夫差每次出游,勾践总是拿着马鞭,恭恭敬敬地跟在后面。后来吴王夫差有病,勾践为了表明他对夫差的忠心,竟亲自去尝夫差大便的味道,以便来判断夫差病愈的日期。夫差病好的日期恰好与勾践预测的相合,夫差认为勾践对他敬爱忠诚,于是就把勾践夫妇放回越国。越王勾践他回国以后,立志要报仇雪恨。为了不忘国耻,他睡觉就卧在柴薪之上,坐卧的地方挂着苦胆,表示不忘国耻,不忘艰苦。经过十年的积聚,越国终于由弱国变成强国,最后打败了吴国,吴王羞愧自杀。
[성어고사]
공원전497년,양국재부초교전,오국대획전성,월왕구천피박퇴거도회계。오왕파병추격,파구천위곤재회계산상,정황비상위급。차시,구천은종료대부문충적계책,준비료일사금은재보화궤개미녀,파인투투지송급오국태재,병통과태재향오왕구정,오왕최후답응료월왕구천적구화。
단시오국적오자서인위불능여월국강화,부칙무이우방호귀산,가시오왕불은。
월왕구천투강후,편화처자일기전왕오국,타문부처량주재부차부친묘방적석옥리,주간수분묘화양마적사정。부차매차출유,구천총시나착마편,공공경경지근재후면。후래오왕부차유병,구천위료표명타대부차적충심,경친자거상부차대편적미도,이편래판단부차병유적일기。부차병호적일기흡호여구천예측적상합,부차인위구천대타경애충성,우시취파구천부부방회월국。월왕구천타회국이후,입지요보구설한。위료불망국치,타수각취와재시신지상,좌와적지방괘착고단,표시불망국치,불망간고。경과십년적적취,월국종우유약국변성강국,최후타패료오국,오왕수괴자살。
In the Spring and Autumn period(春秋时期), the state of Wu(吴国) and the state of Yue(越国) were neighbors. But there were always wars between them. During a war Wu beat Yue. Goujian(勾践), the king of Yue, was caught. Fuchai(夫差), the king of Wu, wanted to make Goujian lose face. He sent Goujian to do some hard work, like feeding horses. Goujian was very angry, but he didn’t say anything. He just did what Fuchai asked him to do. When Fuchai got sick, Goujian looked after him day and night. Three years later, Fuchai finally let Goujian go back to his own state. After getting home, Goujian began to plan his revenge. Goujian didn’t want to forget his hard time in Wu. So he slept on brushwood(柴草) at night and tasted gall(胆) every morning. The brushwood was cold and the gall was bitter, just like his days in Wu. Goujian kept asking himself, “Did you forget the past three years?” Goujian worked hard all the time. He worked with farmers and trained with soldiers. He made his people rich and his state strong. Twenty years later, Goujian led his army to beat Wu.
 

吴越

중국의 역사상 오(吴)나라와 월(越)나라만큼 오랜 기간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맺힌 앙숙지간(怏宿之間)으로 지낸 나라는 없다. 오왕합려는 월나라와 싸우다가 손에 부상을 입고 그 부상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아들 부차는 원수를 갚아 달라는 오왕합려의 유명(遺命)을 가슴에 간직하고 오왕에 오른다. 오왕부차는 오왕합려의 원수를 잊지 않으려고 와신(臥薪)하며, 즉 거친 검불더미 위에 자리를 펴고 잠을 자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결의를 다진다. 오왕부차는 자기의 방문 앞에 늘 신하를 세워놓고 자기가 방에 들어갈 때마다 “부차야! 월왕이 아버지을 죽인 원수라는 사실을 어찌 잊으려 하느냐?"(夫差! 你忘了越王杀你父亲的仇吗?)고 외치게 할 정도로 늘 오왕합려의 원수를 갚을 날만을 학수고대한다.
  

 

吳越同舟(오월동주)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다(원수끼리 서로 마주치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하지만, 한 배를 타고 가다가 거센 바람을 만나면 위험을 헤쳐 나가기 위하여 서로

hanzischool.tistory.com

  
월왕구천(越王勾踐)은 오왕부차의 의지를 꺽기 위하여 먼저 오나라를 공격한다. 그러나 오왕부차의 잘 훈련된 군대가 월왕구천의 공격을 크게 물리치고, 월왕구천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가지만 오왕구차가 외계산 전체를 포위하자 이미 승패가 갈리고 만다.

夫差彫像

오왕부차(吴王夫差)에게 패배한 월왕구천은 신하 범려(范蠡)의 간언대로 어떤 치욕을 당하더라도 살아남아 재기하기 위하여 월나라를 오나라의 속국으로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스스로 오왕부차의 신하가 되고 왕비를 첩으로 주기로 하는 굴욕적인 화약을 맺는다. 월왕구천은 오왕부차의 말을 기르고 수레를 끄는 치욕(disgrace)을 참고 견딘다. 월왕구천은 자신이 싸움에서 패퇴시켜 죽인 오왕합려의 묘소(오왕합려의 무덤은 중국 소주(蘇州)에 있는 호구(虎丘 Tiger Hill)라는 정원 안의 검지(劍池 오왕합려가 아낀 명검 3,000자루를 함께 묻어 검지라 한다)라는 연못 아래에 있다고 하며, 많은 사람이 오왕합려의 무덤을 찾아 명검을 차지하려 하고도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무덤과 명검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에서 2년 동안 묘지기로서 온갖 궂은 일을 다 한다. 오왕부차가 오왕합려의 묘소를 찾는 때에는 묘지기인 월왕구천은 오왕부차가 말에서 자기의 등을 밟고 내리도록 자신의 몸을 구부려 주는 모욕까지도 감내한다. 오왕부차가 병이 나자, 월왕구천은 조만간 병이 쾌차할지를 알아보려고 오왕부차의 똥을 맛보는 상분(嘗糞 똥의 맛을 보면서까지 충성을 다하다)의 충성까지 보인다. 월왕구천이 자신의 똥을 맛보면서까지 병상을 살피는 충성을 바치고, 또한 오왕부차의 신하 백비(伯嚭)가 그만하면 이제는 풀어줘도 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자 결국 오왕부차는 - 월왕구천을 풀어주면 월나라가 앞으로 10년 동안 백성을 늘리고 재산을 불려서 다시 10년 동안 백성을 가르쳐 깨우친다면 20년 뒤에 오나라가 수렁에 빠진다고 하면서 반대하는 다른 신하 오자서(伍子胥)의 간언을 듣지 않고 - 월왕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낸다.

勾踐嘗糞

3년이라는 세월을 오나라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보낸 후에 월나라로 돌아온 월왕구천은 방안에 쓸개(膽)를 매달아 놓고 앉을 때나 누울 때나 꼭 그 쓸개를 핥아(嘗膽) 쓰디쓴 맛을 보면서 회계산에서 당한 패전에 대한 뼈에 사무쳐 잊을 수 없는 치욕, 즉 회계지치(會稽之恥)를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女忘會稽之恥邪?). 그리고 월왕구천은 미녀 서시(西施)를 오왕부차에게 보내 오왕부차를 미혹(迷惑 마음이 흐려지도록 홀리다)하고 뇌살(惱殺 여자의 아름다움이나 성적 매력으로 남자를 홀리다)시키는 한편,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쓸개를 핥으면서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꾼다.

월왕구천

오왕부차는 서시(西施)의 미색에 홀려 정사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서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궁을 지어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궁에서는 매일 연회를 열고 밤새 환락에 빠져 허송세월(虛送歲月)하기 바쁘다. 다른 한편 월왕구천은 국정에 힘을 쏟아 국력을 키우고 있다. 월왕구천은 오나라가 초나라의 공격을 받아 대패하자, 그 이듬해 드디어 오나라를 공격하여 회계산의 치욕으로부터 꼭 20년만에 오왕부차로부터 항복을 받는다. 오왕부차는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한다.
결국 오왕부차도 이루지 못한 패자의 위업을 월왕구천은 달성한다. 그리고 월왕구천은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 초(楚)나라의 장왕(莊王), 오(吳)나라의 합려(闔閭)와 함께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으로 중국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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